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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무골농원에서 전하는 사과이야기


사과의 원산지는 카프카즈(코카서스)북방지대라고 알려져 있는데, 유럽의 중부지방에서 발견된 호서시대의 유물중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 재배 역사가 대단히 오래된 것으로 인정 되고 있다.


사과 나무속 식물의 원생종은 유럽.아시아 및 북아메리카 대륙에 25종 정도가 분포되어 있는데,현재 재배되고 있는 품종은 주로 유럽과 서부 아시아에 분포된 원생종 중에서 개량된 것이고, 아시아 동부와 북아메리카의 원생종 중에서는 계량된 품종이 거의 없다. 사과는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에 의하여 애호되었고, 재배종은 주로 로마인들에 의하여 유럽 각국으로 전파되었다.우리나라 사과재배의 시초는 자생능금의 재배에서부터 시작된다. 계림유사(1103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능금의 어원은 임금으로서 숲에서과실이 붉게 익을 때 새가 날아와 쪼아먹게 된데서 연유했으며, 내금으로도 불렀다. 이 임금은 발음이 나랏님과 같아 능금으로 불려졌다.조선조(1649~1659)에 중국으로부터 유럽대륙의 능금속 사과가 전래되었으나 널리 재배되지는 못하고, 종묘 제사용으로는 우리나라 능금중에 좋은 것을 사용하였다는 전래가 있으며, 현재 재배하고 있는 개량종 사과가 도입되어 경제적 재배를 하게 된 역사는 길지 않다1884년경부터 외국인 선교사를 통하여 각지방에 몇 그루씩의 사과나무를 들여와 재식하기는 하였지만 성공한 예는 드물었고, 대부분 관상용으로 재배하는 정도였다.

근대적인 사과의 재배는 1901년 윤병수가 미국선교사를 통하여 다량의 사과나무 묘목을 들여와 원산 부근에 과수원을 조성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근대 사과재배의 효시라고 할 수있으며 1906년 8월에 구한말 정부에서 뚝섬에 12ha 규모의 원예모범장을 설치하고각국에서 국광, 축, 욱, 홍옥등 사과 개량품종을 도입 품종비교, 재배시험 등을 실시하여 과수재배의 국가적 기초를 확립하였다일제식민지 하에서는 주로 일본인들이 많은 과원을 소유하여 재배하였으며, 해방후 사과재배 기술의 부족과 낙후된 경제사정으로 크게 발전하지 못하였고 6.25사변으로 과원은 더욱 황페해졌으나, 휴전으로 더불어 우리나라 모든기관이 정상으로 회복되면서 과수재배 기술의 개발 및 연구활동이 본격화 되었다.1960년대 접어들면서 사과재배가 농가 소득작물로 권장되고 과실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재배면적과 생산량은 크게 늘어났으며, 1970년대에는 사과의 왜화재배를 계기로 우리의 사과재배기술이크게 향상되었고, 사과의 유망성이 국민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하여 과수의 재배면적이 급진적으로 확대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